top of page

데드볼

익명

“야구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매번 찾아온다고? ”

“어.”

“그때마다 문자도 남겨준다며.”

“아냐. 문자는 가끔.”

“야. 됐다. 이거 맞네.”

“맞아?”

“백퍼. 아니면 나 이제 경기 안 뜀.”

 

 

한 술 더 떠서 나 은퇴함. 강찬희. 왜. 아니다. 야, 진짜라니까? 핏대까지 올려 소리치는 찬희의 확신에 옷을 갈아입던 영균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새어 나오는 기쁨을 막아보려 했지만 자꾸만 광대가 들썩거렸다. 옷에 팔 한 쪽 다리 한 쪽 넣을 때마다 흐흥. 콧소리가 절로 났다. 찬희의 애정 어린 욕지거리에도 행복했다. 영균은 보송해진 몸과 마음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 최근 기록, 태양이 형을 차례대로 누르려다 아직 점퍼 지퍼를 잠그고 있는 찬희에게 재확인했다.

 

 

“형도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아니면 그만둔다고.”

 

 

오키. 미련 없이 탈의실을 나선 영균은 바로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눌러 태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뜨르르릉. 뜨르르릉. 뜨르르, 여보세요? 기다렸던 음성이 영균을 반겼다.

 

 

“어, 어디야?”

-나 집이지.

“나 지금 훈련 끝났는데. 형 네 집으로 가도 돼?”

-너희 안 바빠? 와도 돼?

“응.”

-알겠어 그럼 와.

“뭐 먹고 싶은 건?”

-왜 그래 갑자기. 이미 치킨 시켰으니까 오기나 해.

 

 

화면 너머 태양의 질타에도 하하 웃던 영균은 전화를 끊자 마자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오후 다섯시 사십오분. 그리고 냅다 달렸다. 지름길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그런 거 몰라서 큰길로 뛰고 또 뛰었다. 목표는 여섯시 도착. 눈 뜬 시간에 하는 거라곤 식사 빼고 훈련밖에 없는데 그 훈련에 뜀박질도 있으니까. 영균은 이를 꽉 깨물고 뛰었다. 처음엔 십오분안에 가고도 남지 했는데 뛸수록 가슴 안 쪽이 타들어 가는 게 느껴져서 이대론 안되겠다 했다. 그래서 어금니 꽉 깨물고 열라 달렸다. 아마 김영균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달린 날이었을 거다. 비록 여섯시 삼분에 도착했지만.

 

 

 

 

 

데드볼

 

 

 

 

 

“되게 빨리 왔네. 택시 타고 왔어?”

 

 

태양의 물음에도 영균은 고개만 겨우 저을 수 있었다. 오자 마자 물 한 통을 비운 영균이 그 뒤로 아무 말이 없자, 태양은 다시 물었다. 그럼 걸어서? 영균은 또 고개를 저었고, 태양은 또 다시 물었다. 그럼 뛰어서?

 

 

“어….”

 

 

탄식에 가까운 영균의 대답에 태양이 픽하고 웃었다. 훈련 끝나고 힘들었을 텐데. 뭐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구나? 태양이 말 끝을 늘리며 영균을 놀리자 영균의 볼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딱히 다른 반응이 없는 영균에게 태양도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영균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둘의 정적이 묘한 어색함을 완성했을 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예, 나가요! 기다렸다는 듯이 태양은 현관으로 향했다.

 

 

“식탁에서 먹자. 바닥 청소를 안 해서.”

“어, 어.”

 

 

치킨을 뜯어도 콜라를 마셔도 어색한 기류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고요한 방안에 치킨 씹는 소리만 나서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태양이 먼저 분위기를 전환하려 입을 열었지만, 영균의 목소리가 먼저였다. 평소보다 담담한 어투로 말을 시작하는 영균에게서 태양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라. 이거. 이 분위기 지금.

 

 

“나 형 좋아해.”

“영균아.”

“꽤 됐어. 대답은 지금 안 해줘도 돼.”

 

 

태양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고백 후 콜라를 들이켠 영균은 입술을 몇 번 움찔하더니 결국 먼저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평소처럼 멀리까지 바래다주진 않았다. 태양은 영균을 보내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콜라 잔을 비우고 그 잔에 맥주를 따랐다. 거품 흐르는 걸 멍하니 지켜보다 식탁에 걸어 놓은 손이 축축하게 젖은 후에야 태양은 정신을 차렸다.

 

 

“…”

 

 

한 모금 마신 후 도로 넋을 놓은 태양의 머릿속은 온통 김영균과 야구뿐이었다. 김영균, 야구, 김영균, 야구. 말도 안 되는 끝말잇기를 계속하다 홀짝. 김영균 뭐하나 싶어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꿀꺽. 근데 프로선수도 안 된 놈이 연애에 정신 팔 시간은 있나 짜증 내다 크으. 이 짓을 열 번 정도 더했나. 아무튼 그로부터 한참 지나고 태양은 잠이 들었다.

 

 

 

 

 

태양만큼이나 영균도 마음이 뒤숭숭했다. 고백하면 다 끝날 줄 알고 마냥 행복만 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김칫국 제대로 마신 거였다. 술은 입에도 못 대는 상황이라 아쉬운 대로 얼음물을 마셨다. 얼음 와르르 입에 털어 넣고 실컷 씹었다. 고백하던 나랑 눈마주친 유태양 표정은…. 태양을 상기시키고 얼음도 씹고.

 

 

 [너 은퇴해라.]

 

 

영균은 찬희에게 문자를 넣은 뒤 여태껏 태양과 나눴던 문자들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나 폰 바꾼 지 되게 오래됐네. 아무리 손가락을 날려도 메시지의 시작이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스크롤 하던 영균은 2년 전 한 마디에 엄지손가락을 멈췄다.

 

 

 [너 오늘 고백받았다며]

 [어떻게 알았어요?]

 [사귀기로 했어?]

 [아닙니다]

 [그럼 빨리 와라]

 

 

참나. 지가 뭔 상관이래. 예나 지금이나 태양의 심리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악해도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술 취하면 잔소리하면서 데리러 와, 힘들다 하면 바로 밥 사줘. 이 정도는 애교고. 제일 이해 안 되는 거 하나.

 

 

“형 야구 싫다고 그만뒀잖아.”

“응.”

“왜 보러 와?”

 

 

그야…. 네가 경기를 하니까? 아, 재미도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양은 눈만 깜빡거렸다. 백 번을 물어도 백 번 답이 같았다. 영균은 되물음 대신 한숨을 쉬었다. 선수 그만둘 정도로 싫은데 재미있을 수 있지. 그래서 경기마다 찾아올 수도 있지. 그렇지. 근데 내가 경기를 해서 온다는 건 좀. 고개를 끄덕였었던 당시도, 지금도 생각할수록 영 이상하다.

말해줄 걸 그랬나. 자꾸 그런 호의가….

 

 

“사람 바보 만드는데.”

 

 

됐다. 오지랖 그만 부리자. 사이 더 멀어질 일 있나. 고함과 함께 침대에 드러누운 영균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다. 이런 날엔 일찍 잠이라도 들어야 하는데, 잠도 통 안 오고 머리는 뒤죽박죽. 스트레스 받으니까 속도 좀 쓰리고. 영균은 이불을 걷어 핸드폰을 들었다. 혹시나 해서 카톡도 들어가 봤지만, 연락은 아무에게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찬희에겐 읽고 씹혔다. 괜히 봤네. 한층 더 저기압이 된 영균은 다시 이불을 얼굴 위로 올렸다.

 

 

 

 

 

“김영균! 정신 안 차릴래!”

 

 

영균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과하고 공을 잡았다. 여기서 한 번 더 실수하면 오늘은 집에 못 간다. 눈을 감고 자기암시를 하던 영균이 호루라기 소리에 눈을 뜨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있는 힘껏 던졌다.

 

 

“스트라이크!”

 

 

그래, 영균아! 제대로 하자! 코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균은 공을 던졌다. 삼진아웃으로 마지막 타자까지 마무리한 영균은 바로 아이싱을 하러 걸음을 옮겼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영균아.”

“네?”

“야구 그만둘 거 아니지?”

“에이, 감독님. 아니죠. 제가 왜요?”

“그런 게 아니면 임마. 아무리 연습 경기라도 그렇지 중간에 한눈팔고 그러면 안 되지.”

 

 

드래프트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번에는 들어야 할 거 아냐. 가만히 듣던 영균이 몇 초 후 멋쩍게 웃어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맞장구치는 영균의 속을 동료들이 모를 리 없었다. 동공을 굴리며 눈치만 보던 찬희는 어제 성내던 탈의실에 도착해서야 입을 열었다.

 

 

“김영균.”

“나 괜찮다니까.”

“아니 그거 말고. 네 짝사랑 얘기.”

 

 

아, 그거. 너 은퇴해야 돼. 영균의 말에 찬희의 눈이 커졌다. 그 형이 너 좋아하는 거 아니래? 미간까지 잔뜩 찌푸린 찬희는 같은 질문을 세 번을 연달아 던졌다. 그럼에도 영균이 답이 없자 입던 후드티를 반 쯤 걸치고 고개를 돌렸다.

 

 

“김영균.”

 

 

영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착잡한 얼굴을 하고 목에 건 수건만 만지작거렸다. 말을 해야 알지. 말 안 해줄 거면 나 그냥 가고. 찬희가 천천히 문 쪽을 향해 걸어가자 영균이 다급하게 말을 뱉었다.

 

 

“아직 모르겠어.”

“뭘?”

“그 형을.”

“알기 쉽게 말해봐. 어제는 알겠다며. 고백도 했고.”

 

 

어디서부터 말하지…. 영균이 머뭇거리자 찬희가 문을 여는 시늉을 했다. 잘 있어라. 영균은 빠르게 찬희의 어깨를 잡았다. 잠만.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래. 영균의 말에 찬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형 고등학생 때까진 너랑 선수였다며.”

“어떻게 알았어?”

“몰라. 어쩌다 보니. 전에도 이랬냐?”

 

 

영균이 고개를 저었다. 그땐 안 좋아했어. 여기 대학 와서부터 그런 거야. 머쓱한 듯 영균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고등학교 다닐 땐 어땠는데. 좀 안 맞았어. 아닌가? 이것도 모르겠네. 영균의 말끝이 점점 흐려지자 찬희가 영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연락 금방 오겠지. 그때 전화해라.”

“뭐야, 가려고?”

“어. 나도 바빠서.”

 

 

문을 열고 걸어가는 찬희를 영균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정하네. 정신을 차리고 옷을 다 갖춰 입었을 땐 주위 동료들도 다 나간 뒤였다. 영균은 뒤늦게 건물에서 나와 폰을 확인했다. 연락은 무슨 개뿔. 잠시나마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속으로 한참이나 자책하던 영균이 두어 걸음 걷다가 멈춰 섰다. 왼쪽 신발 끈이 풀려 발을 헛디딜 뻔한 것이 이유였다. 영균은 근처 벤치에 앉아 신발 끈을 묶었다. 그런데 지이잉.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바로 일어나 점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영균은 두 눈을 살짝 찡그렸다.

 

 

[드래프트 언제야?]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발신자 유태양이고 번호도 맞는데. 그 전에 드래프트가 형이 상관이 있는 일이었나. 메시지 함을 들락날락하던 영균은 달력 어플에 들어가 일정을 확인했다. 2차 드래프트 지명 9월 10일.

 

 

 [9월 10일인데 왜?]

 [그거 끝나면 대답해 줄게 그때까지 준비 열심히 해]

 

 

영균은 얼빠진 표정을 하고 태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까지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더니 네 번째에는 신호음이 들린다. 그리고 곧 기다리던 목소리. 영균은 떨림을 꾹 숨긴 채 입을 열었다.

 

 

“지금 대답해주면 안 돼?”

-응.

“왜?”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아…. 알겠어.”

-맞다.

“어?”

-그… 아니야. 연습 열심히 하고. 저녁 대충 먹지 마.

 

 

어, 하고 영균의 답이 들리자 마자 태양은 전화를 끊었다. 잠이 들기 전까지 태양이 제게 하려던 말이 무얼지 고민하던 영균은 입술을 깨물었다. 혀엉…. 아까아 하려더언 마알이 뭐어야아아…. 아, 아니다. 자판을 누르는 족족 말로 내뱉던 영균의 입이 굳게 닫혔다. 함께 보낼 이모티콘까지 정해놓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말을 하려다 만 이유가 있겠지. 정신 차리자.

그래서 보낼까 말까 하던 메시지는 보내지지 않았다. 제 물음조차도 부담일까 싶어 아예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어젯밤처럼 이불을 끝까지 올려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영균은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한참 느린 시작이었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던 중학생의 영균은 식사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모두 연습으로 채우려 애썼다. 식사 시간조차도 공을 들고 있을 때가 많았지만, 이만큼 노력하지 않는다면 쟁쟁한 아이들 사이에서 빛도 못 보고 꺼질 것이 분명했다.

 

원하던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영균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더 유난스러워졌다. 프로 야구 신인 드래프트가 걸려있었으니 뼈라도 갈아 넣어야 했다. 눈에 띄면 바로 프로 선수 데뷔다. 만연해진 사실을 상기시킬수록 마음은 조급해졌다. 여유를 챙기려고 해도 주위가 다 이름 한 번쯤 날린 에이스들이어서. 영균은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을 줄여가며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영균아.”

“네.”

“밥은 제대로 먹으면서 해. 피지컬 중요한 거 알잖아.”

“넵.”

“맞다. 태양이랑 연락되니?”

“… 아니요.”

“그래도 네가 가장 친했었잖아. 그날 이후로 연락 안 해?”

“아.... 연락 안 해요.”

 

 

영균은 고개를 숙였다. 됐다. 가 봐.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영균은 달려가 휴대폰을 들었다. 누가 보면 안 되니까. 나무 뒤에 숨어 휴대폰 전원을 켜고 태양의 번호를 찾았다. 이어 통화 버튼을 눌러 귀에 살짝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형. 그, 아직도 돌아올 마음 없어요?”

-그런 말 하려고 전화한 거면 끊는다.

“아니, 다쳐도 계속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영균아. 나 그냥 내가 싫어서 그만둔 거야. 나한테 신경 써주는 건 고마운데, 너부터 신경 써. 선수 데뷔하고 싶다며.

“그렇긴 한데….”

-할 말 더 있음 문자로 해. 너희 곧 쉬는 시간 끝나.

 

 

예엡. 태양의 말대로 전화를 끊자 마자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영균은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고 운동장 한가운데를 향해 뛰었다. 달리는 와중에도 병원에 있을 태양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하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런데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집중해야지 집중. 말과는 다르게 머리는 계속 유태양을 찾았다. 솔직한 머리 덕분에 몸이 고생했다. 간만에 기합도 받고 땀 좀 뺐다.

운동장에서 구르다시피 한 영균은 흙투성이가 된 상태로 휴대폰을 찾으러 향했다. 아까 나무 뒤에 던져 놓고 갔는데. 몇 번을 뒤적거리다 옆 옆에 있는 나무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겨우 손에 넣은 핸드폰을 들고 태양에게 메시지를 입력하기 위해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훈련 끝났는데 형한테 가도 돼요?]

 [그래]

 

 

원하는 답이 도착하자 영균은 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까지 평소보다 두 배는 빨랐다. 멍하니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던 영균은 쌀쌀한 바람에 몸을 떨었다. 춥지는 않은데 조금 쌀쌀하네. 겉옷 지퍼를 끝까지 잠근 뒤 젖은 머리칼을 털었다. 아 맞다 택시. 택시를 잡기 위해 정문 앞으로 가 손을 흔들었다.

 

 

“송대 병원이요.”

 

 

차 안에서도 영균은 태양에게 어떤 말부터 건네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오늘이 네 번째 가는 병문안이라지만 아직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쳤다. 말들이 모두 야구 관련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상상에 상상을 이어 태양의 복귀까지 그리던 영균은 도착했다는 기사의 말에 급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잠시만요. 오천원권 하나와 오백원 두 개를 내고 문을 열었다. 가까운 거린데 꽤 나왔네. 돌아서 오셨나. 찝찝한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버튼은 익숙하게 눌렀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아니, 불편보다는 불안했다는 게 맞겠다.

 

 

“영균아. 나 그런 말 듣자고 너 오라고 한 거 아니야.”

“형 생각해서 하는 말인 거 알잖아요.”

“내 생각 안 해줘도 된다고. 이런 거면 필요 없어.”

“형!”

“이제 나가 봐. 훈련 열심히 하고.”

 

 

불안했던 건 아마 가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였나 보다, 하고 영균은 생각했다. 태양의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의 1층 버튼을 누르자마자 후회했다. 진짜 여섯 번째 감각이라도 있는 건가. 그게 뭐든 간에 따랐어야 했는데. 빨개진 눈시울을 벅벅 닦으며 영균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내가 잘못했다 치자. 근데 이런 거면 필요가 없다고? 개너무해. 집에 도착해서도 태양 생각에 얼굴을 구겼다.

 

 

“…”

 

 

근데... 사과는 내가 먼저 하는 게 맞겠지? 영균은 미간만 좁힌 채 핸드폰을 들었다. 뭐라고 하지.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기를 몇십분째. 지웠다 썼다 했던 내용은 가장 처음 썼던 멘트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게 제일 괜찮은 것 같으니까. 엄지손톱만 깨물던 영균이 마침내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제가 너무 제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 같아요 형 말대로 잘못된 행동이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

그날은 유독 기분이 좋았다. 컨디션도 좋았고, 날씨도 좋았고, 아는 사람이 오지 않으면 실수하는 징크스도 일어날 일이 없었다. 관객석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막대풍선과 색색깔의 플랜 카드를 들고 태양을 향해 손을 흔든다. 덕분에 태양은 실점 없이 경기를 이끌었다.

 

 

“유태양 선수 김현서 선수의 타구를 잡나요!”

“유태양 선수, 아! 다이빙 캐치로 잡으려다 베이스에 팔을 부딪힌 것 같습니다. 바로 교체가 되는데요.”

“안타깝습니다. 오늘 유태양 선수 컨디션 굉장히 좋았거든요.”

 

 

괜찮냐는 물음에도 태양은 고개만 저었다. 드래프트 전에 하는 마지막 경긴데. 저번 실수 만회하려면 이렇게 끝내면 안되는데…. 통증과 함께 눈물이 앞섰다. 준비도 열심히 했고, 진짜 잘 할 수 있는 경기였는데. 더 빨리 뛰어갈 걸. 조금만 더 일찍 갔어도. 속으로 한참을 자책하던 태양은 머리를 숙였다. 바지 위로 참아왔던 눈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제발. 빨리 회복될 수 있는 거여라.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채 닦기도 전, 태양은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에 탔다.

 

 

“여기 보시면 왼쪽 어깨랑 팔꿈치 근육 이쪽이 크게 손상을 입었어요. 회복 기간은 빨라야 6주입니다. 6주가 지난 후에도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고요, 재활 운동까지 포함하시면…. 두 달 쯤 걸릴 것 같습니다.”

“두 달이요?”

“네. 이건 최대한 빨리 회복했을 때고, 길면 세 달 가까이도 걸릴 수 있어요.”

 

 

그래, 뭐. 재활하고나면 할 수 있는 거니까. 프로 데뷔도 대학 진학 후에 하는 선수들도 있었으니 자신도 그 길을 따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19년 인생 지금껏 야구만 해왔으니 쉬기도 하고 그래야지. 태양은 자신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병원살이 불과 일주일 채 되었을 때였다. 태양은 당장이라도 병원을 탈출하고 싶었다. 쉬기도 하고 어쩌구 말했던 건 취소. 뻐근한 몸을 들썩일 때마다 진지하게 생각했다. 샤워하러 간다고 하고 튈까. 물론 계획이 실행된 적은 없었지만 생각만큼은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이주일 뒤. 태양은 탈출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 대신 다른 고민이 생겼다. 대학 진학 후에도 데뷔를 못 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할 줄 아는 건 야구밖에 없는데. 졸업할 때까지 캐스팅 못 받으면 끝이잖아. 대학 가서 야구 그만둔 선배들 많다는데 그 이유 때문일까.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니 쓸데없는 고민을 말려주는 이도, 들어주는 이도 없었다. 태양은 시커먼 생각들을 점점 키워냈다. 그 전과는 다르게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 야구 그만둘까.”

-왜? 힘들면 그만해도 되긴 하는데….

“나중에 프로 선수 못하면 어떡해. 난 할 줄 아는 게 야구밖에 없잖아.”

-생각보다 오래 하긴 했지. 어릴 때 운동시키려고 가르친 거였으니까.

“그래?”

 

 

힘들면 그만해. 지금부터 이것저것 하면서 맞는 거 찾아보면 되겠지. 바빠서 전화 끊을게. 밥 잘 챙겨 먹고. 전화가 끊기자 태양은 평소처럼 넋을 놓고 반대편에 놓인 빈 침대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하는 거지. 일주일 동안 같은 고민만 하고 있네. 성적이 좋았으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텐데.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도 지겨워질 즈음이었다. 태양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응시했다. 검정 화면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멋대로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랐다.

 

 

“저 야구 그만하려고요.”

-태양아, 잠깐만.

“죄송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퇴원하면 인사드리러 갈게요.”

 

 

태양은 충동적이었다. 전화를 걸어 그만둔다고 선언하기까지,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담을 수도 없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허탈하고 캄캄했다. 사실 감독님 목소리 들었을 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릴 때 의무적으로 해서 애정도 없을 줄 알았지만 그만둔다니까 시원한 것보다 미련이 컸다. 하루만 더 생각해 볼 걸 그랬나. 후회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연습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초중고 내내 운동만 했었는데. 계속 떠올렸다간 궁상맞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태양은 흐려진 시야를 무시하고 핸드폰을 들어 감독님과 코치님, 선배들 몇몇의 번호를 지웠다.

이름 대신 전화번호들로 얼룩덜룩해진 통화 기록 사이로 영균의 이름이 눈에 띈다. 김영균. 맹해진 코끝을 들썩이며 생각했다. 야구랑 관련된 건 다 지우고 싶은데. 그냥 얘도 지워버릴까.

 

 

 

 

 

“이럴 줄 알았으면 지울걸.”

 

 

뒤늦게 후회하는 태양에게 보란 듯이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가 너무 제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 같아요 형 말대로 잘못된 행동이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죄송하면 죄송할 일을 만들지 말던가. 툴툴거리던 태양은 몇 시간 전 상황을 상기시키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형 야구 계속하면 안돼요?

싫다니까.

왜요? 아파서 그래요?

그냥 싫어.

그런 게 어딨어요. 곧 퇴원하시잖아요. 그때부터 제가 도와드릴게요.

영균아.

 

 

답지 않게 고집을 부리던 영균에게 태양도 답지 않게 성질을 부렸다. 언성을 높이고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태양의 모습에 당황했던 영균의 모습이 아직 생생했다. 붕어처럼 뻐끔거리던 입술로 끝내 내뱉은 단어가 형. 태양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허, 하고 웃었다. 내쫓다시피 한 영균의 뒷모습이 살짝 애처롭게 느껴졌지만, 입꼬리는 수평을 되찾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비뚤어진 얼굴을 하고 태양은 영균에게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그리고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나름대로 감정을 식히는 중이었다. 흰 천장이 까맣게 변할 때까지 태양은 영균의 말들을 떠올렸다.

 

유리로 된 창문 사이로 햇살이 조각나 쏟아 내렸다. 늦잠을 자려던 태양은 시계를 확인하고 이불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커튼 치고 잘 걸. 더 자고 싶은데. 마음과는 다르게 눈이 감기지 않았다. 결국 태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다.

온몸에 가득 배인 알코올 냄새도 다음 주면 끝이 날 예정이었다. 아침 식사에 재활 치료까지 마치고 돌아온 태양이 벽에 걸린 달력으로 시선을 옮겼다. 영균이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 쳐놓은 경기 날짜가 신경 쓰였다. 퇴원 다음 다음날. 올 수 있으면 와달라고 부탁하던 영균이 달력과 겹쳐 보였다. 형, 무리하지는 말고요.

 

 

“…”

 

 

태양은 눈을 비비고 한숨을 쉬었다. 혼자 있으니까 별 게 다 보이네. 가벼운 신세 한탄을 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어 리모컨을 찾아 들어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렸다. 돌리고 또 돌리고. 아무리 올렸다 내려도 재미가 없었다. 이거 아니면 또 폰인데. 지겨웠다. 태양은 하루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진짜 왔네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 안 그러면 다시는 너 안 찾아온다.”

“알겠어요. 몸은요? 괜찮아요?”

“응. 난 괜찮은데, 너 언제까지 존대 쓸거야?”

“네?”

“말 편하게 해. 나 이제 야구부 선배 아니잖아.”

 

 

아…. 어엉. 영균이 모기 목소리로 답했다. 태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경기에 대해 물었다.

 

 

“이틀 뒤 이 경기장에서, 열한시 반. 또 보러 오시…. 게?”

 

 

영균의 반 존대에 태양이 크게 웃었다. 어. 또 보러 오시게. 머쓱한 얼굴을 하던 영균은 이내 태양을 따라 웃었다.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던 날만 보려고 했었는데. 지금까지 가득했던 미련 덕에 경기가 꽤 재미있었다. 다른 경기들도 보고 싶었지만 가린다고 가려지는 얼굴도 아니고. 괜히 다른 팀 보러 갔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태양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영균의 경기들만 보러 다녔다.

 

 

“오늘은 어땠어?”

“잘했던데. 실수도 없고. 이대로 가면 프로선수는 껌이겠다.”

 

 

한두 번 보니까 다음 경기, 그다음 경기가 보고 싶었다. 해서 능력이 되는 한 계속 보러 다녔다. 그러다 보니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었다. 태양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영균을, 정확히는 영균의 경기를 보러 갔다. 영균을 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야구에 대한 갈망과 욕심 따위들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함께 했던 훈련들이 떠오르는 건 물론,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머리로 매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근데 감독님이 형은 왜 매번 경기만 보고 가냐는데….”

“알고 계셨구나. 그건 내가 감독님 찾아뵐게.”

“정말이지?”

“기대는 하지 말고.”

 

 

염치도 면목도 없지. 어떻게 다시 한다고 해. 내 입으로, 그것도 전화로 그만둔다고 통보했는데. 감독님이건 코치님이건 맨정신으로 찾아뵐 수 없었다. 낯뜨거운 일이었다. 태양은 애꿎은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가서 무릎이라도 꿇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

9월 10일.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2차 드래프트가 다가왔다. 여러 이유로 밤잠을 설친 영균은 퀭한 얼굴로 지명되기만을 기다렸다. 1라운드 10순위까지 정해졌지만 그 안에 영균은 없었다. 10순위에 불려도 좋으니 제발 김영균, 제발. 뒤늦게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주 잡은 두 손이 축축해졌다.

 

 

“여보세요.”

 

 

영균은 4라운드 1순위로 지명되었다. 몇 라운드 몇 순위로 불렸건 영균에겐 중요치 않았다. 영균은 드래프트가 끝나기 무섭게 전원을 켜고 태양의 번호를 찾았다. 이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우우. 기다리던 답을 들을 차례였다.

 

 

-여보세요?

“형! 나 프로선수 됐어!”

-진짜? 축하해. 될 줄 알았다.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어…. 글쎄?”

-나 거기 근천데, 너 어디야?

“방금 건물 나왔어. 곧 주차장.”

-혹시 시간 돼? 할 말 있어서.

 

 

영균아? 태양이 재차 물었다. 그제야 영균은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강한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어! 나 여기서 기다리면 돼?”

-응. 거기 가봐서 알아. 차 많으니까 주차장 말고 더 나오면 벤치 여러 개 있거든? 거기서 기다려.

“알겠어.”

 

 

영균은 서둘러 모자를 벗고 머리를 정돈했다. 휴대폰 화면에 까맣게 비치는 자신을 이리저리 돌리며 체크했다. 발끝까지 새하얀 야구복이 오늘따라 아쉬웠다. 지금 보니까 색이 좀 별로인 것 같기도 하고. 옷자락만 만지작거리던 영균의 시야 안에 익숙한 인영이 들어왔다. 여기서 봐도 무조건 유태양이네. 태양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영균은 초조해졌다. 발을 앞뒤로 움직여가며 긴장을 풀었다.

 

 

“영균아 진짜 축하해. 기사도 보고 왔어.”

“고마워. 형 덕분이야 다.”

“네가 열심히 했지.”

“…. 그, 나한테 하려던 말이 뭐야?”

“아. 영균아.”

“응.”

“나 여기 옆에 있는 초등학교 야구부에서 코치하고 있어.”

“어?”

“코치님이 알아봐주셨어.”

“형.”

“나, 야구 다시 해보려고.”

 

 

…. 어. 잘 생각했어. 영균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응원해줄게. 진짜? 어, 당연하지. 태양은 내리깔았던 시선을 올려 영균과 맞췄다. 이어 영균의 손을 잡았다. 애써 미소 짓고 있던 영균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었다.

 

 

“영균아.”

“…”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전보다 굳은 얼굴을 한 영균이 태양의 손을 천천히 풀었다. 잠시 공중에 떠 있던 태양의 손은 코트 주머니 안으로 모습을 숨겼다. 영균아. 불러도 반응이 없자 태양이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영균은 두 발자국 뒤로 향했다. 원상복구 된 거리에 태양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나. 어떡하지. 당황스러운 눈치의 태양을 응시하던 영균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

“영균아. 미안해,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지.”

“좋아해.”

“어?”

“형은.”

“…”

“오늘 말해준다고 했잖아.”

“……. 미안해.”

 

 

생각해봤는데 나한테 너는 그냥…. 소중한 동생 같아. 그, 네가 싫다는 게 아니고……. 태양의 말이 길어질수록 영균의 손이 떨렸다. 손이 떨리고, 목과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눈물도 나올 것 같았지만 혀를 꽉 깨물고 참았다. 절대 울고 싶지 않았다. 궁상맞게 울긴 왜 울어. 내가 설레발 친 건데. 형을 미워할 필요도 없지. 떨궜던 고개를 들어 태양과 눈이 마주치자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정말 미안해.”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미워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워해도 될 것만 같았다. 뜨문뜨문 떠오르는 지난날 태양의 호의들. 이상하리만치 다정했던 행동들이 영균을 부추겼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끝내 마음 구석에 처박아뒀던 말들이 튀어나왔다.

 

 

“왜 그랬어, 그럼?”

“영균아.”

“왜 내 경기만 보러왔어. 부르면 오고 가는 사람도 아니면서 자꾸 데리러 오고, 마중 나오고 배웅해주고.”

“김영균.”

“…. 이름 부르지 마.”

 

 

술 취해서 데리러 갔던 건 네게 매번 경기 표를 받아서, 힘들다 해서 밥 사줬던 건 네가 학생 때처럼 밥 안 챙겨 먹어서 병원 갈까 봐, 네 경기만 보러 다닌 건 순전히 내 이기심 때문에. 나름 각각의 이유가 있었음에도 태양은 말을 잇지 않았다. 이미 두 볼을 축축이 적신 영균에게 더 이상의 감정 소모는 없었으면 했다. 차라리 울지 말고 욕을 해주지. 품에 안아 토닥여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태양의 단순한 배려가 다른 이에겐 사랑의 표현이었다. 무심코 베푸는 친절들을 이제는 없애야 했다.

 

 

“영균아, 정말 미안해.”

“나 갈게.”

“좋은 날 나 때문에 기분 망쳐서 미안해. 불편하면 이제 연락 안 해도 돼.”

 

 

뒤돌아 걸어가던 영균이 태양의 말에 멈춰 섰다. 태양에게 돌아가 그건 싫다고 말할까, 잠시 고민하던 영균은 입술을 깨물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지금 가서 뭘. 연락 계속해봤자 나만 힘들 텐데. 손톱자국이 나도록 세게 주먹을 쥐고 걸었다.

그런데 자꾸만 울컥. 시야가 뿌예지고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반복에 비례해 영균의 걸음 또한 점차 느려졌다. 눈 감았다 뜨면 기억 안 났으면 좋겠다. 갑자기 기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허무맹랑한 생각들에 빠져 땅만 보고 걸었다.

 

 

“…. 형?”

 

 

말 그대로 땅만 보고 걸었다. 앞에 뭐가 있든 신발만 보며 걸었다. 바로 앞이 신호등도 없는 횡단보도라는 건, 태양이 팔을 잡지 않았더라면 몇 걸음 더 걷고 난 뒤에야 알아챌 일이었다. 미안. 나도 그냥 가려고 했는데. 영균이 멍하니 태양을 바라보자 태양은 사과했다. 이어 붙잡고 있던 영균의 팔을 놓고 물러섰다.

 

 

“잘 가.”

“잠깐만.”

 

 

영균의 부름에 태양이 고개를 돌렸다. 입술을 들썩이며 한참을 고민하던 영균은 태양을 향해 두 발자국 앞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가까워진 거리에 움찔했지만, 시선을 피하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낯선 거리에서 영균은 태양과 눈을 맞췄다.

 

 

“나 연락 계속할 거야.”

“…. 고마워.”

“그리고…….”

 

 

빵, 빠아앙, 경적이 크게 울렸다. 영균의 목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았다. 진득해진 손바닥이 무색해질 만큼 타이밍이 구렸다. 뭐라고?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줘. 태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균이 입을 열었다.

 

 

“야구 하는 거, 도와줄게.”

“정말?”

“근데 시간 안 맞아서 못해줄 수도 있고...”

 

 

태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물었다. 정말이니? 굳이 안 해도 된다니까? 입꼬리나 내리고 말해. 태양이 크게 웃었다. 영균은 마음이 복잡했지만 일단 웃어넘기기로 했다. 아직 원망스럽고 미워죽겠는데. 웃는 것도 속 편해 보여서 짜증 나는데. 유태양의 저런 모습조차 좋아하는 사람은 나라서. 애초에 더 많이 좋아하는 역할이 내 것이라서.

 

 

“그래도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돼. 곧 바빠질텐데 쉬는 날엔 쉬어야지.”

“또 거짓말하네. 아까 그렇게 웃어놓고.”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거라고 했으니까. 영균은 속으로 다짐하고 계속 다짐했다. 이번에는 형이 손해 보게 해야지. 난 여기까지만 좋아할 거고, 나머지는 형이 하게 될 거야.

 

 

“티났어?”

“됐어. 얼른 가자. 해 진다.”

 

 

형이 나보다 날 좋아하게 될 거고, 더 많이 좋아하는 역할도 내가 아닌 형이 맡게 될 거야. 형이 고백해도 안 받아줄 거니까 마음의 준비나 해. 영균은 태양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예고장을 날렸다. 데드볼 한 번 날렸으니 홈런 쳐야지.

 

 

 

 

 

이제 진짜 실수 안 할 거야.

 

 

 

 

드래프트: 10개 구단이 다음 해에 졸업하는 고등학교 3학년생 혹은 대학 4년생 등을 대상으로 순번을 정해 원하는 선수를 선택하는 제도, 글 속에서는 KBO 리그 2차 신인드래프트를 일컬는다.

아이싱: 어깨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얼음찜질. 주로 투수들이 이용하는 치료법이다.

홈런: 타자가 친 공이 외야의 펜스를 넘어가거나 타자가 홈 베이스를 밟을 수 있는 안타.

데드볼: 야구에서,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에 스치거나 맞는 것. 사구(死球).

無明長夜:무명장야

𝐓𝐀𝐍𝐆𝐘𝐔𝐍 𝐂𝐎𝐋𝐋𝐀𝐁𝐎𝐑𝐀𝐓𝐈𝐎𝐍𝐒

bottom of page